레일러 8호의 서울역 특집은 의욕적으로 여러 필진이 붙어서, 철도공사의 협력을 받아서 만들었지만 사실 역을 특집으로 편집한다는게 생각보다 제약요건이 많다 보니 욕심만큼 충분하게 뽑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서울역에는 코렁탕 농도가 매우 짙은 시설도 하나 있다 보니 제약이 상당히 많은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역에는 소화물 사업에서 그 위치가 크던 구 소화물 취급장이나, 과거 사용하다 직원전용으로 사용하는 지하통로 등 숨은 요소들이 많이 있고, 역 건물도 남대문정거장 시절의 초대역사 및 2대 가역사, 그리고 현재 문화재 지정이 된 3대 석조역사, 철도청사를 겸하던 구 서부역사, 이후 1차 민자역사와 현용의 2차역사 등 생각외로 역사적인 변천도 많이 내포하고 있는 등, 사실 캐면 캘수록 이야기거리가 많은 소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집을 준비하면서 상당히 어려웠던 점은 사진의 문제였는데, 철도공사 측이 협력한 사진들로 해방 이후는 어느정도 보충할 수 있었지만, 1차 민자역사 사진이 의외로 귀했던게 의외랄까 그렇습니다. 물론 현재도 역사 자체는 마트가 사용하고 있어 건물은 남아 있지만, 노란 빛이 도는 탁 트인 80년대 공간의 그 감각을 한번 정도 공유해 보고 싶었달까.
그리고 일제 당시 사용중인 서울역 사진은 의외로 귀한데, 그 대신에 서울역 건축을 담당했던 시미즈구미(淸水組)가 준공사진첩을 남겨두고 있어 최초의 모습은 잘 남아 있습니다. 레일러 특집에서도 이 시미즈구미의 사진을 인용했지만, 당시에는 가지고 있던 사진이 외관 위주로만 확보한 상태다 보니 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마침, 뒤늦게나마 다른 사진 소스를 확보했는데, 기사의 부족함을 이걸로 좀 벌충해 보고자 합니다. 사진 출처는 2003년에 철도청이 간행한 "사진으로 보는 해방 이전의 철도역사"인데, 다시 온라인 상에서 열람하면서 사진을 옮겼습니다. 저작권적으로 보면 좀 애매한 일이지만, 원 소스 자체가 1925년이니까 회색지대에 걸쳐있고, 공공간행물이니까 좀 양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8호 기사의 문화역 서울 사진과 이리저리 대조해 읽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을 겁니다.

서울역 개집표구의 사진으로, 현 복원 서울역 건물의 북측(경의선 방향)에 지붕만 씌워진 공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해방 이후 역 확장 과정에서 용도가 한번 바뀌었고, 또 민자역사 공사로 인해 구 목조 과선교가 없어지면서 공용통로로 바뀌어버린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위 사진 안쪽의 내려가는 계단을 1번 홈에서 찍은 것으로, 지금도 계단 자체는 남아있지만 일부 개축된 부분이 존재합니다.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고, 1차 민자역사 시기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구 목조 과선교 내부의 광경으로, 다이쇼 시절에 아직까지 동화정책이 본격화되기 전이다 보니 한글과 영어, 일본어가 같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왼쪽의 차도(車道)라고 표시된 곳은 소화물 운반용 카트 통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개의 과선교를 소화물 작업과 여객 작업 양용으로 사용했기에 저런 조치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과선교는 나름 비싼 시설물로, 일본에서도 도시지역에서나 설치하던 시설물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역은 3면 5선 구조로, 1면은 역사에 바로 붙은 것이고, 2, 3면은 과선교를 건너가 이용해야 했는데 이 과선교는 기단은 콘크리트로, 상부구조물은 철골과 목조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1980년대까지 남아있다가 민자역사 건설과정에서 폐지되었습니다. 나름 역사적인 구조물 중 하나였지만, 당시의 인식부족과 본선 상부 설치 구조물이다 보니 안전문제가 겹쳐 폐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목조 과선교에는 무려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는데, 다만 이건 소화물 취급용도로만 쓰인 것으로 사람을 위한 시설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엔 조선에 몇 안되는 물건이어서 꽤 유명했다던가.

개집표구 옆의 건물에는 소화물 취급장이 있었고, 그 실내 분위기는 이런식이었습니다. 철도 소화물 시설물 치고 실내에 이렇게 구성된게 좀 독특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과거엔 택배가 없다 보니, 우편소포 아니면 소화물이 아니면 개인이 물건을 보낼 방법이 없다시피 했었고, 그러다보니 거의 어지간한 우체국과 맞먹는 창구 규모를 가진게 아닌가 합니다.

서울역 구내 이발소의 사진은 보통 잘 안알려져 있는데, 마침 사진이 있어 인용합니다. 의자가 간결한게 지금의 이발소들과 구분점이 아닌가 합니다. 의외로 변한게 적은 부분이랄까. 당시 서울역은 지금의 복합쇼핑몰 급의 문화적 위상을 가졌는데, 서울역 양식당과 함께 이 이발소가 그 상징물이 아닌가 합니다.

서울역 중앙 출입구 한쪽에 이던 매점의 정경인데, 영업중인 것을 촬영한 걸로 보입니다. 잡다한 물품의 디테일이 안보이긴 하지만, 일용품 외에 사진엽서 같은 기념품을 팔던걸로 보입니다. 지금의 편의점형 구조와는 전혀 다른 왕년의 풍경이랄까. 물론, 지금도 길거리 부스는 저런 형태가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서울역의 매표창구인데, 근래까지 쓰이던 창구와 달리 좀 폐쇄적인 느낌이 듭니다. 저런 타입이 실은 일본도 그렇지만, 유럽이나 미주에서도 저 시대에는 기본이다시피 했고, 지금도 여전히 저런 창구를 쓰는 곳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문화역 서울284에서 복원을 열심히 했지만, 창구 앞의 줄서기 난간이나, 철창 비슷한 부속물이나 창구표기, 표와 돈을 두는 석제 보울, 그리고 창구 위쪽의 요금표 같은 디테일은 살리지 못한게 좀 아쉽긴 합니다. 이런 부분이 아무래도 문화적 경험이나 역량의 차이랄까. 물론, 자료가 많은 동네와, 저시대 시각표나 운임표 같은 디테일 자료가 없는 동네의 격차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또 재현의 목적 차이가 있기는 할겁니다만서도.

매표창구 내부의 분위기입니다. 이쪽 사진은 의외로 남아있는게 잘 없고, 사진이 없기는 오늘날에도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지금은 전산장비가 가득한게 창구지만, 과거에는 에드몬슨 용지나 기타 규정 용지에 스탬프나 간이인쇄장비, 또는 수기로 기재사항을 작성해 처리를 하는게 매표업무의 기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또, 전산으로 일괄처리되는게 없어서, 티켓이 나가면서 금전출납도 전부 기록해 처리하는 등, 매표창구 뒤의 업무량도 상당히 방대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지정좌석이나 침대지정, 연락운임 같은게 끼면 매표업무는 아무나 할만한 일이 아니었음직 합니다.
여담이지만, 매표창구 안쪽에는 위아래로 연결된 계단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전표나 현금, 승차권 용지의 운반을 분리된 동선으로 취급하게 되어 있었고, 이건 복원시에도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보안 유지가 들어가던 흔적이랄까.


그리고 특집에서 지하층의 취재를 하지 못했는데, 실은 현재도 기계실 등으로 사용중인 구획이 있기도 하고, 현재도 지하층은 공개가 되지 않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일제 당시에는 아마도 열차 관계 업무나, 역무 관련한 사무실이나 창고 등이 있었음직 한데, 그 외에도 서울역 그릴의 식당이 상당공간을 차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 사진이 지하 식당설비의 사진입니다.
주방이 조금 구닥다리에 가까운 느낌이 강하게 들고 지금의 주방과는 레이아웃이 좀 많이 다른 편입니다. 여기서 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천장쪽에 붙은 축과 벨트들일 건데, 저 시대에는 전동기라는 것은 비싸고 귀한 물건이었고, 그래서 한대의 전동기에 벨트, 풀리, 축 등을 저렇게 붙여서 동력을 쓰는 각 기기들을 가동하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서울역 그릴쯤 되니 저렇게라도 기계화가 되었달까.
실제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공장들은 기계 위에 저런 축에 벨트를 걸어서 기계를 가동하는게 보통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기계들이 일렬로 규칙적으로 배열해 동력 레이아웃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어야 했었습니다. 그만큼 장비의 조작도 까다롭고, 또 안정성이나 정밀성도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안전 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달까 그렇습니다. 또 기계 자체만이 아니라 공장 전반의 관리를 하는 공무 업무 역시 상당히 복잡방대했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저걸 가동하는데 전동기가 아니라 증기엔진이나 내연기관을 돌리는 정도는 예사였다시피 하기도 합니다. 전기동력이 산업동력의 대세를 타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랄까.